[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육류, 어류를 납작하게 편(片)을 만들어 햇볕에 말린 음식을 포(脯)라 하였는데, 주로 쇠고기, 노루고기, 꿩고기, 생선 등으로 만들며, 주재료에 따라 우포(牛脯), 돼지고기로 만든 저포(猪脯), 노루포(獐脯), 사슴고기로 만든 녹포(鹿脯), 뀡고기로 만든 생치포(雉脯), 대구포, 민어포 등으로 불렀으며, 실록에는 얇게 저미어서 양념을 하여 말린 고기를 뜻하는 포육(脯肉)에 관한 기사가 30여건으로, 그중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세종(世宗) 대에는 신하와 백성을 모아놓고 함께 실시하던 사냥 의식을 겸한 군사훈련인 강무(講武)에서 짐승을 쏠 적에 왼편에서 쏘아서 오른편 어깻죽지까지 통한 것을 첫째로 삼아, 그것을 포를 만들어 제기의 일종인 두(豆)에 담는 건두(乾豆)를 하여 종묘(宗廟)에 바치게 하였는데, 강무 때 잡은 노루와 사슴은 적당히 포육(脯肉)을 만들어 건두를 준비하게 하였으며, 사복시(司僕寺)에서 강원도로 나가서 잡은 노루와 사슴을 포육(脯肉)을 만들려고 궁궐에서 고기를 다루는 별사옹(別司饔)을 먼저 가게 하였는데, 만약 이 사람들이 진상(進上)한다고 빙자하여 여러 가지 물건을 함부로 요구하여 거두거나, 이치에 부당하게 침해(侵害)하는 일이 있거든 즉시 갖추어 아뢰라고 강원도 감사에게 유시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대체로 기쁜 경사가 있을 때마다 거의 다 벼슬(爵)을 내리거나, 포육을 내렸고, 미납세를 면제하거나 전조(田租)를 감하여 은택을 더하여 주었는데, 일부 신하가 포육을 내리는 것이 시행하기 어렵고, 당상관(堂上官) 이상으로서 가자(加資)의 예(例)에 들지 않는 자에게만 정월 초하루인 정조(正朝)와 동지(冬至)때인 정지(正至)의 예에 의하여 잔치를 내려 주고, 노인에게는 주육(酒肉)을 내려 주도록 건의하자 이·병조(吏兵曹)에 명하여 의논하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세조(世祖)대에는 중추부(中樞府) 대신의 집에 갈 때 명하여 청주(淸酒) 10병(甁), 대구어(大口魚) 20미(尾), 포육 5속(束), 해(醢) 5항(缸), 건치(乾雉) 30수(首), 사슴(鹿) 1구(口)를 가지고 가서 위로하게 하였으며, 성종(成宗)대에는 평안도(平安道) 절도사(節度使)가 2, 3월에는 도내(道內)의 군사를 모두 진발(進發)하여 나라의 제사에 쓰일 포육(脯肉)을 마련하기 위하여 행하는 사냥인 제포 산행(祭脯山行)이라는 명목으로 종횡(縱橫)으로 말을 달리며 밀과 보리인 모맥(牟麥)을 짓밟아서 노루와 사슴(獐鹿)을 잡는 것이 많으면 1천여 마리에까지 이르니, 군졸(軍卒)이 수고로울 뿐만 아니라 여러 고을에서 음식물을 바치는 지공(支供)의 폐단이 적지 않아 그 폐단을 없애게 해달라는 건의를 받고, 임금이 이전에 그 도(道)의 관찰사(觀察使)와 절도사(節度使)를 지낸 사람에게 물어 처리하도록 한 바가 있습니다.
연산군(燕山君)대에는 전라도 임실(任實)에서 진상하는 포육(脯肉)에 개고기와 염소고기를 섞어 놓아, 신하(臣下)로서 차마 못할 바를 하였다는 보고를 받고 담당관리를 잡아 올려서 국문하게 하였으며, 중종(中宗) 대에는 세자(世子)가 회강(會講)하고 나서 음식을 내렸는데, 그것을 먹은 관원 등이 포육(脯肉)을 먹고서 두통과 배를 앓으며 구토와 설사를 하였고, 하인(下人)들 중에서도 먹은 사람들이 그러하자, 궁궐의 음식을 관장하는 사옹원 제조(司饔院提調)가 만일 독이 있는 포육이 아니라면 반드시 독충(毒蟲)이 오줌을 싸서 그런 것이므로 각도에 유시하여 정결하게 말리도록 건의하자, 임금이 놀라며 각도에 유시를 내리도록 하고 어느 고을에서 공상(供上)한 것인지를 파악하도록 하였으며, 남은 것이 있으면 다시 하인들에게 시험해 보라고 한 바가 있는데, 후에 알아본 바로는 건물(乾物)을 봉진(封進)하면 한 그릇에다 모두 섞어 두어 어느 도에서 봉진한 것인지 알 수 없고, 그 포육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어봤는데, 독이 없었다고 밝혀지기도 하였습니다.
577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강원도 관찰사가 사슴고기로 만든 녹포(鹿脯)를 바치니, 사재감(司宰監)에 맡기고, 호조(戶曹)에 명하여 강원도의 실농(失農)한 각 고을의 상공(常貢) 포육(脯肉)을 감면해 주게 하였습니다.
■세종실록 96권, 세종 24년 5월 1일 경신 기사 1442년 명 정통(正統) 7년
강원도 관찰사가 녹포를 바치니 실농한 각 고을의 상공 포육을 감면해 주다
강원도 관찰사가 녹포(鹿脯)를 바치니, 명하여 사재감(司宰監)에 맡기고, 이내 호조에게 강원도의 실농(失農)한 각 고을의 상공(常貢) 포육(脯肉)을 감면해 주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1책 96권 6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