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도매시장’ 이번엔 바꿀 수 있을까?
‘농산물도매시장’ 이번엔 바꿀 수 있을까?
  • 김재민
  • 승인 2024.05.17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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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농산물유통구조 개선대책의 함의 분석

도매법인간 경쟁촉진 공공성과 효율성 높일 대안
가락시장에서 과일 경매가 진행 중에 있다.

‘농산물 유통구조 혁신’,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유통비용 절감’, ‘유통 단계 축소’라는 타이틀이 붙은 유통관련 정부의 정책은 역대 정부마다 조금씩 이름과 포장이 바뀌며 제시됐지만 눈에 띄는 효과를 체감한 프로그램은 많지 않았다.

정부의 유통관련 정책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효과를 발휘한 것을 꼽으라면, 공영도매시장 건설과 경매제의 도입, 소매유통산업의 개방과 대규모소매유통업과 체인화된 대규모소매유통업의 허용이라 하겠다.

도매시장건설과 도매시장 운영을 규정하는 농안법의 제정으로 농산물 유통의 투명성이 확보됐고, 높은 거래비용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였다. 대규모소매유통업의 허가는 영세한 규모의 소규모 사업장 일색의 유통업을 규모화 하면서 외국계 유통업체와의 경쟁을 가능케 했고 소매유통업에 마케팅 개념이 유입되면서, 소비자 편익을 증가시키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 정부 정책이 아닌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무수히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한 유통정책에서는 번번히 헛발질만 하였다. 대표적인 것을 소개하면 축산물을 저렴하게 공급되기 위해 직거래가 필요하다며 농축협에 이동판매차량을 보급한 것이나, 우리 농업경영체의 규모나 조직화를 고려하지 않고 협의에 의한 가격 결정이 필요하다며 정가수의매매, 시장도매인제를 2000년대 초에 도입한 것이나, 산지조직화가 필요하다며 운영능력도 없는 농가에 소규모 APC를 건설토록 한일, 축산물의 위생적 유통을 위해 포장유통을 1980년대 권장했던 일, 육가공을 정육점이 아닌 도축장에서 하도록 하겠다며 대규모 LPC를 건설하도록 보조금을 지급한 사례가 여기에 속한다.

 

윤리적·규범적 유통정책의 한계

농축산물의 유통구조나 방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별다른 성과가 없었던 이유는 농산물의 특성, 지리, 인구 구조, 유통 주체의 규모나 자금력, 조직화, 역사, 자본주의의 성숙도, 제도 등 여러 조건과 환경에 영향을 받아 발전하고 적응해 온것인데 이러한 요인을 무시하고 규범적, 윤리적으로 접근을 하거나 구체적인 실행 프로세서는 없고 선언적 목표만을 나열하였기 때문이다.

유통정책이 규범적, 윤리적 접근이란 특정 국가의 유통 생태계를 관찰하고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려 접근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상적 유통방식을 가정하고 그 방식이 옳으니 우리의 유통구조나 방식을 비효율적, 후진적 유통방식으로 규정해 혁파하고 새로운 방식의 이식을 선으로 여기는 행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윤리적, 규범적 접근으로 인해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했던 유통정책은 시장에 잘 녹아나지 않았고, 또 이식되는 과정에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이로 인해 유통 경로상에 있는 여러 거래 주체들이 갈등과 반목을 하거나 잘못된 정책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 또한 발견되었고, 그 정책을 추진했던 정권이 물러나거나 담당 공무원들이 부서를 옮기면 소리소문없이 해당 프로그램은 사장되는 길을 걷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5.1 농수산물 유통구조 개선방안은 실천이 어려운 규범적, 윤리적 접근으로 인해 단순히 어떤 목표를 설정하는 것으로 그칠 것인지, 아니면 실제 정부가 목표로 하는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지 찬찬히 살펴보았다.

산지유통조직의 규모화나 온라인도매시장 활성화 등의 목표는 어떤제도의 문제가 아니고 정부의 지원과 플레이어들의 선택의 문제기 때문에 자세히 거론하지 않으며 대신 도매시장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한다.

경매전 반입된 상품의 품질을 확인하는 중도매인들
경매전 반입된 상품의 품질을 확인하는 중도매인들

공영도매시장 공공성·효율성  어떻게 높일까?

정부는 공영도매시장의 공공성과 효율성 제고를 위해 도매시장 내 경쟁 촉진과 법인 수익의 적정성 검토, 도매가격 변동성 완화를 과제로 꼽았다.

도매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도매법인 간의 경쟁을 촉진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공영도매시장이 건설된 이후 도매법인이 지정되었는데 초기 지정받은 법인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특혜라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성과가 부진한 법인을 퇴출하고 신규법인을 공모를 통해 지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도매시장 내에 도매법인의 숫자의 적정성을 정부가 따져서 필요하다면 지자체로 하여금 신규법인 지정을 의무화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현행 도매법인들의 반발이나 저항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100% 인적 자산의 경험과 노하우가 도매시장과 도매법인의 활성화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기존 법인을 경험이 없는 신규법인이 넘어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신규법인의 참여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 각 도매법인들은 오랫동안 산지와 소통하면서 출하농가나 출하법인을 관리하고 있고, 오랫동안 거래를 해온 출하주체들의 경우 기존에 거래했던 법인 소속 경매사와 중도매인이 출하자의 능력이나 농산물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알고 있어 적정한 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재 정부가 관심을 갖고 있는 농산물의 가격 변동성 완화를 위해서는 각 도매법인이 경매를 통한 거래보다는 정가매매, 수의매매 등 협의에 의한 거래방식을 대폭 확대해야 하는데, 경매를 통해 거래하려는 농가들이 줄을 서 있는 상황에서 많은 품이 들고 분쟁의 소지까지 있는 정가매매와 수의매매 활성화에 도매법인들이 나설 유인은 현재로서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도매시장의 공공성과 효율성을 강화한다는 계획은 겉으로 보기엔 선언에 그칠 공산이 커 보인다.

 

도매시장 변화 위한 신규법인 지정 시나리오

다만 정부가 도매시장 공공성과 효율성 강화를 위해 추진하는 저성과 법인에 대한 퇴출, 신규법인 개설유도 그리고 가락시장 내 일부 법인에 대한 거래 품목 제한을 해소하는 방안은 정부가 생각하는 도매법인 간 경쟁촉진과 변동성 완화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로 보여진다.

만약 정부의 지침대로 도매시장에 새로운 도매법인이 지정된다고 가정해 보자.

도매법인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청과물을 구매해줄 중도매인 모집과 해당 법인으로 출하자를 모집하는 일이다.

신규법인은 생존을 위해 기존 도매법인에서 능력있는 중도매인을 스카웃이 필요하고, 기존 법인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것이다. 산지에도 다른 법인보다 더 좋은 조건에 농산물을 팔아주겠노라 약속을 해야한다.

그래야만 기존 거래처를 대신해 신설 도매법인으로 출하를 결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하자에게는 변동성이 심한 경매에 의한 가격 거래방식보다는 미리 가격을 정하는 정가매매를 통해 거래를 약속하고 출하자가 거래처를 바꿀 정도의 가격을 제시하거나, 도매시장 수수료의 한시적 할인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 수 밖에 없다.

우수중매인과 출하자 확보를 위한 신규법인의 움직임에 출하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또 중도매인의 이동을 차단하기 위해 기존 도매법인들도 더 좋은 조건의 거래방식 그리고 지원안을 내 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인적네트워크와 인적자원의 경험이 가장 강력한 자산인 도매시장에서 신규법인이 기존 법인과 경쟁해 성공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신규법인의 시장 진입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쓸수 있는 카드는 저성과 법인의 퇴출을 공식화 하는 일과 대아청과처럼 품목제한을 받고 있는 법인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는 방식으로 신규법인이 시장에 진입하는 효과를 거둘수도 있다.

가락시장 내 무, 배추, 대파 등이 거래되는 야외 경매장 전경
가락시장 내 무, 배추, 대파 등이 거래되는 야외 경매장 전경

저성과 법인 퇴출 및 가락시장 품목 제한 조치 해제 시나리오

대아청과 입장에서 품목 제한 조치 해제는 오래된 숙원 과제였다. 하지만 품목 제한 조치 해제를 요구할 때마다 나머지 가락시장 5개 청과법인의 반대에 부딪혔다. 나머지 법인들은 가격도 비싸고 마진도 높은 과일과 과채, 채소류를 거의 다 취급할 수 있지만, 대아청과는 무와 배추, 양배추, 총각무, 대파, 쪽파 등 부피는 크고 가격은 낮은 품목만을 유통시키기 위해 설립된 만큼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이로인해 대아청과는 무와 배추, 총각무, 양배추, 대파, 쪽파 등에 있어 가락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다른 청과법인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청과회사는 과일과 과채, 어떤 청과회사는 채소 등을 특화시키며 발전해 왔다. 사과는 A법인에 출하해야 가격을 잘받을 수 있고, 토마토는 B법인, 오이나 가지는 C법인이 경쟁력이 있다. 청과부류 도매법인이 6개가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 법인마다 경쟁력이 있는 특화품목이 있어서 사실상 경쟁하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중도매인들이 모든 품목의 원예농산물을 유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특정한 품목을 잘 판매하는 중도매인이 나타나기 마련이고, 특정 품목에 특화된 중매인이 소속된 청과법인으로 출하하면 더 좋은 가격을 받는다는 소문이 나면서 자연스럽게 도매법인마다 주특기가 생겨났다 할 수 있다.

이렇게 고착화된 구조에서 대아청과가 무와 배추 이외에 고랭지 배추 수확기에 강원도의 감자를 함께 취급하기로 결정한다면, 기존에 감자를 많이 취급했던 도매법인과 자연스럽게 경쟁체제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완전 신설법인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보다 대아청과가 연단위, 분기단위로 품목을 몇 개씩 늘려가는게 시장내 경쟁을 촉진하는 기폭제가 될수 있다는 것이다.

대아청과가 완전 신설도매법인보다 품목을 확대하는 것이 유리할 수는 있지만, 대아청과 소속 중도매인은 수십년간 무와 배추, 양배추, 대파 등의 품목만을 전문적으로 유통해왔기 때문에 감자 등 다른 품목의 유통 노하우나 거래처가 없어 기존 법인과 경쟁에서 승리를 장담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결국 품목확대를 위해서는 무와 배추만 유통했던 중도매인들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일, 다른 품목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중도매인 유치가 필요하고, 출하자에게도 다른 법인보다 더 좋은 가격을 안정적으로 제시하겠다며 약속하고 정가매매 등 협의에 의한 가격 결정 방식을 파격적으로 도입하는 노력이 선행될 것이다.

결국 시장을 빼앗고자 하는 자와 빼앗기지 않으려는 법인간 경쟁이 펼쳐지면서 도매시장내 거래방식 전환 경쟁, 수수료 인하경쟁, 서비스 강화 경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는 저성과법인의 퇴출을 공식화 하는 조치로도 비슷한 효과를 볼수 있는데, 도매시장 평가항목에 가격 변동을 완화하기 위한 거래방식 비율에 높은 배점을 준다거나, 주로 취급하는 품목 이외에 취급 품목 확대와 같은 것을 평가항목에 추가함으로써 고착화된 시장을 경쟁하는 시장으로 바꿀수 있게 된다.

5.1 유통구조 개선 대책의 함의

신규법인 퇴출, 상장수수료율 적정성 검토, 가격변동성 완화를 목표로 하는 5.1 유통구조 개선대책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누군가 이 구조를 흔드는 메기역할을 해야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철저한 분석이라기 보다는 지금까지 유통정책의 성과없음에서 비롯된 판단) 정부가 아무리 목표를 세우고 인센티브 체계를 만든다 하더라도 이미 시장이 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리수를 둘 법인들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신규법인 공모나, 저성과 법인의 퇴출, 품목 제한 법인에 대한 규제 해제를 통해 법인 간 경쟁을 촉진해 가격 변동성을 완화하고, 대농가 서비스, 대중도매인 서비스의 향상을 도모하는 도구로 활용하려 했다고는 볼수 없다.

다만 기업자본, 대기업자본, 금융자본이 청과도매법인을 지배하는 구조에 대한 비판이 오랫동안 있었고, 실제로 가락시장의 상장수수료를 조례를 통해 낮추려 했던 시도 등을 종합해 볼 때 가락시장 내 도매법인의 독점적 지위를 어떻게든 해소해 보겠다는게 정부의 의지로 보인다.

이러한 독점 체제를 흔드는 가운데 생존을 위한 법인들의 전략적 행동이 출하자와 구매자의 편익을 증가시키고, 1990년대 말부터 꾸준히 시도되었던 거래방법의 변화 및 이로인한 가격 변동성을 완화까지 예기치 못한 효과를 누리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 된다면, 지금까지 선언적 유통대책, 규범적 유통대책만을 남발했던 과거 정부와 달리 실제 농산물도매시장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출하농민과 중도매인은 물론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후생이 모두 증가하는 긍정적 변화를 기대해 볼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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