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돼지문화원, 씨유 어게인
굿바이 돼지문화원, 씨유 어게인
  • 김재민
  • 승인 2024.05.15 20: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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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by 돼지문화원, See you again

 

돼지문화원 전경. 장성훈대표가 1992년부터 돼지체험농장에 대한 꿈을 꾼지 20여년만인 2011년 문을 열게된다.

돼지를 테마로하는 국내 최초 체험형 농장을 표방하며 2011년 문을 열었던 돼지문화원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종돈 회사 금돈을 운영하던 장성훈 대표가 1990년대 일본의 돼지 체험농장 모쿠모쿠를 둘러보고 우리 양돈업계도 돼지를 주제로 하는 체험농장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꿈을 꾸었고, 2011년 그 꿈을 실행에 옮겨  개장 한 것이 돼지문화원이다.

장성훈 대표는 1985년 강원대학교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최대 돼지육종회사인 다비육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1992년 우수사원으로 뽑혀 일본 양돈업 연수 기회를 잡은 장 대표는 연수 중 큰 영감을 얻게 됐고, 이후 다시 일본 모쿠모쿠농장으로 연수를 가게 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사업 모델이 이것이구나 깨닫게 된다. 10여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1997년 금보농장을 설립해 양돈업을 시작한 장 대표는, 2002년 유전자원센터를 운영하며 종돈사업에 발을 들여놓았고, 2004년 ㈜금보육종으로 법인 전환해 전문 육종회사로 발돋움한다.

2008년에는 치악산금돈 브랜드 육을 출시해 가공 및 유통사업으로 확장하면서 종돈-돼지사육-가공-유통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그러던 중 2010~2011년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고 지나가던 때 장 대표의 농장도 이를 피할 수 없었는데, 구제역으로 인해 실추된 양돈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돼지를 테마로한 복합문화공간 ‘돼지문화원’을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겨 운영에 들어간다. 1990년대 직장생활을 하며 꿈꾸었던 목표에 한발 다가서게 된 것이다.

돼지문화원이 우리 양돈산업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소비자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에 시작하였지만, 이 사업은 장 대표에게는 가시밭길과 같은 힘든 길이었다.

종돈과 돼지사육에 있어서는 전문가이지만, 가공과 유통, 외식, 체험 등 2~3차산업에 있어서는 전문가일 수 없기 때문이다.

2011년 이후 장 대표는 종돈과 비육돈 사육, 육가공 등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식당과 체험장 운영에 쏟아부었다. 외식업 등은 3년 이상을 해야 흑자로 전환된다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렇게 대한민국 최초의 돼지복합문화 공간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며 기반을 닦아나가는가 싶었지만 연이은 악재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특히 전국을 슬픔으로 빠져들게 했던 세월호 침몰사고는 사고 이후 희생자 인양에만 208일이 걸릴 정도로 장시간이 소요됐고, 온 나라가 이 기간 슬픔에 빠지면서 소비시장은 급속도로 얼어붙게 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 ASF와 코로나19 펜데믹까지 견뎌내며 10주년을 맞이했지만 예상치 못한 모돈농장 화재를 맞이하게 된다.

처음 화재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농장 재건은 시간문제라 생각했지만, 상황은 생각처럼 녹록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돼지문화원의 명물이었던 미니피그 경주

모돈 농장 화재는 곧바로 비육농장의 돼지 입식을 어렵게 했다. 비육농장에서 돼지가 출하되어야 육가공과 돼지문화원 및 돈육 유통 등 전방산업까지 굴러가는 구조였기에 모돈농장이 다시 건축될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결국 새끼돼지를 외부에서 수혈하기로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여기서 사달이 났다. 비싼 돈을 들여 입식한 비육돈에서 질병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던 금돈과 돼지문화원 사업은 큰 균열이 발생했고, 대규모 손실을 보면서 부채상환 압박을 받게 된다.

모돈이 없으니 입식시킬 새끼돼지가 없고 돼지를 키울 수 없으니 매출을 발생시킬 수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큰돈 들여 입식한 새끼돼지가 질병으로 죽어 나가면서 출하 후 다시 새끼돼지를 입식을 해야 했는데 이 고리가 끊어져 버리면서 회생 불가능한 상황이 된 것이다.

장성훈 대표는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사재까지 집어넣으면 어떻게든 회생시키려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채권단은 금돈과 돼지문화원 처리를 위한 감사와 장대표와 협상을 이어나갔고, 재무구조를 분석한 결과 농장에서는 수익이 안정적으로 나고 있었고, 돼지문화원에서 손실이 많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돼지문화원을 매각해 자금을 마련해 채무 일부를 상황하면 회생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 섞인 결론을 내려줬다.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 지정(돼지부문)

하지만 이번에는 경기침체가 발목을 잡았다.

돼지문화원을 매입하려 했던 이들이 여럿 있었으나, 경기침체로 외식업 등 서비스업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매입을 희망했던 업체들이 하나둘 매입을 포기하면서 매각은 계속 불발됐다.

그리고 2024년 2월부터 돼지문화원은 직원들을 내보내기 위한 작업을 했고 3월 돼지문화원 영업을 종료한다.

우리 양돈업의 가치를 알리고 소비자와 소통하는 창구가 필요하다며 돼지를 테마로한 복합문화공간에 자신의 온 열정과 재산을 쏟아부은 장성훈 대표의 도전은 이렇게 27년여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돼지문화원은 돼지를 테마로 하는픽픽폭폭 축제도 개최했었다.

농가가 운영하는 돼지고기 레스토랑, 돼지를 테마로하는 체험행사 개발, 각종 돼지고기 및 부산물을 활용한 육가공품 개발 등의 공로를 인정한 농촌진흥청은 장성훈 대표를 양돈 명인으로 지정하였는데,  그의 돼지에 대한 열정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필자는 ‘대한민국 돼지산업사’를 출판한 이후 2010년대 중반부터 장성훈 대표와 교류를 하기 시작했다. 돼지문화원에 처음 방문했을 때 문화원 입구에 만들어진 돼지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유쾌한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그리고 돼지문화원에서 맛본 삼겹살에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돼지 명인이 사육하고 직접 가공한 돼지고기는 무엇인가 다르긴 달랐다.

치악산 금돈의 부어스트와 돈가스는 정말 비교 대상이 없었다. 미강 등을 활용해 만든 돈가스는 독특한 식감과 맛있는 돼지고기가 어우러지며 냉동 돈가스가 맞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였고, 부어스트는 한경햄의 아버지인 최신일 총장과 교류하며 필적할만한 적수가 없을 정도로 수준을 높였다.

장성훈 대표는 최근 어려운 시기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문자를 돌리고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지금은 움츠려 있지만, 다시 도전하겠다는 약속의 메시지를 남겼다.

개인적으로는 당분간 치악산 금돈과 부어스트, 돈가스를 맛볼 수 없게 되어 무척 아쉽고 속상하다.

장성훈 대표가 다시 재기에 성공하기를 응원하며 “굿바이 돼지문화원 씨유 어게인”

굿바이 돼지문화원, 씨유 어게인.
굿바이 돼지문화원, 씨유 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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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민 2024-05-17 12:05:15
고생하셨습니다. 다시 멋지게 도약하시길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