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물 등급판정 부대 비용 누구에게 청구해야 하나?
축산물 등급판정 부대 비용 누구에게 청구해야 하나?
  • 옥미영 기자
  • 승인 2024.05.13 08:50
  • 호수 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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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이뤄지는 등급판정 위한 등심 절개 작업 도축장 30년간 무료 봉사

도축장, 돼지 이력제 기계 개보수 비용에 등심절개까지 ‘부담 백배’

도축장 인력난 속 근로 기준 강화 고려...관련 비용 정부가 부담해야
축산물등급판정사의 등급판정 모습. 
축산물등급판정사의 등급판정 모습. 

 

[팜인사이트=옥미영 기자]

최근 몇 년간 도축비는 고정 또는 소폭 인상에 그친 상황에서 전기·가스·수도비 등 고정 비용의 큰 폭 상승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 연말 전기료 감면 할인 혜택이 종료될 예정에 있어 도축업계의 어려움이 심화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도축장에선 고유 업무인 도축 작업뿐만 아니라, 축산 부분의 핵심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각종 업무가 부가적으로 이뤄지며 도축장의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축산물 정책 수행을 둘러싼 도축장과 정부의 오랜 갈등과 해결 방안은 없는지 살펴본다.

 

돼지이력제 10년...기계 사용 연한 '훌쩍'

도축장들이 최근 이구동성으로 가장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부분은 돼지이력제 기계 문제다.

돼지이력제는 2012년 10월 브랜드 경영체 16개소의 시범사업을 거쳐 2014년 12월 유통단계 전 과정에 걸쳐 전면 시행됐다. 올해로 제도 도입 10년을 맞게된 셈이다.

문제는 돼지이력제 기계의 내구 연한이 훌쩍 넘어서며 잦은 고장으로 도축장 가동에 적잖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력제 기계는 수년 전부터 고장수리비와 부품구매, 잉크비 등 기계 사용에 크고 작은 비용이 투입되며 도축장들의 골칫거리가 되어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축산물처리협회의 줄기찬 요구로 이력제에 사용되는 잉크비 등을 정부가 보전하게 됐다.

하지만 이력제 기계 문제는 최근 더욱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물을 다량 사용하는 도축 작업장 여건에서 전자제품인 이력제 기계는 평균수명을 넘기며 개보수만으로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축장에선 이력제 기계의 잦은 고장과 개보수로, 원활한 도축 작업에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북의 A 도축장 대표는 “물과는 상극인 전자 기계를 오랜 기간 사용하다 보니 잦은 고장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 들어선 (고장)빈도가 더욱 잦아지고 있다”면서 “개보수 비용은 도축장이 떠안는다고 해도, 기계 수리로 인한 도축 공정이 미뤄지며 이로 인한 직원들의 오버타임 수당 지급까지 오롯이 도축장의 몫이 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경기도의 B 도축장 대표 역시 “기계가 멈춰 수리할 때마다 한번에 수백만 원이 드는 건 예삿일”이라면서 “주요 부품이 고장 나 수리하면, 다시 서브 부품들이 고장 나는 상황들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면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납득이 가질 않는다”고 토로했다.

 

돼지 지육이 이력제 기계를 통과하고 있는 모습.
돼지 지육이 이력제 기계를 통과하고 있는 모습(본지 사진 자료).

등심 절개 30년...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1993년 시작돼 한우의 품질 고급화를 이끌어 낸 정책사업인 소 등급판정 사업도 도축장들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등심단면적과 등심 내 지방 침착을 기준으로 하는 소 등급판정사업에서 ‘등심 절개’는 필수 작업인데, 도축장 입장에선 도축과는 전혀 상관없는 등심 절개작업을 30년 넘게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등심 절개작업은 이른 아침 시작되는 소 등급판정 이전에 작업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이른 새벽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도축장들에겐 인건비 등 경영비 상승의 직접적 요인이 되고 있다.

등심 절개작업은 소규모 도축장이나, 대형 공판장 모두 부담이 되긴 마찬가지다.

당초 정해진 근로시간 또는 정해진 업무 외에 추가로 등심 절개를 맡겨야 해서 시간 외 수당과 같은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거나, 소규모 도축장의 경우엔 급여 외 특별 인센티브식으로 인건비를 추가로 지급하며 작업에 투입하고 있다.

도축장에서 작업자가 한우 등심을 절개하고 있는 모습. 등심 가운데 흉추(등뼈) 7~8번 사이를 절개해야 한다.(본지 사진 자료)
도축장에서 작업자가 한우 등심을 절개하고 있는 모습. 등심 가운데 흉추(등뼈) 7~8번 사이를 절개해야 한다.(본지 사진 자료)

명절과 같은 소 출하 성수기엔 도축장 부담은 배로 늘어난다.

일일 작업물량이 900~1000여 마리에 달하는 농협 음성축산물공판장이나 통합부경축산물공판장의 경우 명절 성수기에 등심 절개에 동원되는 인원만 일일 9~10여 명에 달한다.

1명당 약 100여 두, 양쪽의 등심을 절개하는 등 200여 개 도체 중심을 몇 시간 안에 절개해야 하기 때문인데, 도축장의 비용 부담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도매시장 한 관계자는 “오전 경매 시작 전에 등급판정을 마무리짓고 등급판정이 이뤄지기 전에 등심 절개작업이 모두 마무리되어야 하기 때문에 오전 5시~6시경이면 작업이 시작된다”면서 “등심 절개는 흉추 7~8번 사이를 절개해야해 높은 숙련도를 필요로 하지만 이른 새벽 시간부터 냉장고 안에 서 작업을 수행하는 특성상 도축장 내부에도 또다시 기피 작업에 속해 작업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도축장 경영비 부담 해소 ‘시급’

도축장들은 도축장 본연의 업무와 정부의 정책 수행 업무에 대해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축을 식품으로 전환하는 등 위생적이고 안전한 축산물 생산가공이 도축장의 ‘고유 업무’인 반면, 돼지 이력제와 등심 절개는 정부의 정책 수행을 뒷받침하는 ‘대행업무’라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도축장은 안전한 축산물 공급이라는 기능을 차질없이 수행하기 위해선 경영안정이 중요한데 정부의 각종 정책 업무 수행이 이를 가로 막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축산물처리협회는 지난 2020년 돼지이력제와 등심 절개비용과 관련해 공정거래분쟁 조정 신청을 내고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도축장에 필요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은 공정거래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제출한 바 있다.

최근에는 대통령실에도 도축업계의 부당한 업무 및 비용 분담에 대해 공식질의했으나 정부로부터 이렇다할 답을 얻지 못한 상태다.

업계 전문가들은 소, 돼지 도축비가 실제 비용을 한참 밑도는 현실에서 정부의 정책 수행에 따른 비용은 정부가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도축장들의 경영난은 안전하고 위생적인 축산물 생산을 위한 재투자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이러한 가운데 정부의 정책사업 대행에 따른 비용까지 보전받지 못한다면 도축장의 경쟁력 약화는 물론 국내 축산물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 사안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지목된다. 

특히 돼지이력제와 소 등급판정이 시작된 그때와 지금은 각종 비용 인상과 인력 운용 등이 제도가 도입될 당시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임을 고려할 때 정부의 인건비 지원 등 전향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 및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을 퇴직한 업계 한 관계자는 “1990년대 초반엔 도축장이 별도의 추가 비용 없이 소를 도축 한 뒤 등심 절개 업무까지 맡아 수행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면서 “하지만 주 52시간 근무제도가 도입되는 등 근로 기준에 대한 성격이 명확해지는 등 최근의 달라진 근로여건에서 정부의 정책을 대행하는 데 있어 무상으로 도축장에 이를 맡기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전문가는 “도축장은 가축을 위생적으로 가공 처리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인프라로서 축산물의 위생, 안전과 직결된 만큼 도축장의 건전한 경영을 돕는 것은 농림축산식품부의 중요한 역할”이라면서 “정부 정책 수행에 따른 돼지이력제 기계 교체와 수리비 부담 등은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해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3~4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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